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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이 터질것 같았던 화재사건

월요일을 맞이하여 대청소를 집안 구석구석 열심히 했더니 땀에 흠뻑 젖었다.

저녁하기 전에 드라이 클리닝 맡기러 잠깐 나갔다와야해서 어쩔 수 없이 4시경에 샤워를 하고 나왔는데…타는 냄새가 어디선가 솔솔 열어둔 창문을 타고 들어온다. 가끔 수영장 옆에서 야외 바베큐를 하는 냄새가 아파트 위로 올라오기도 하는데, 이번에는 바베큐의 고기 타는향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이 타는 냄새는 뭐지.. 설마 어디 불난건 아니겠지? 밖에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것 같기도 하고.”

샤워 가운만 두른 채, 창문쪽으로 귀를 귀울였지만 사람들은 모두 영어가 아닌 외국어로 얘기하고 있었다. 냄새의 근원을 모른 채 다시 화장실로 돌아왔다. 행여 진짜 불이라도 났으면 화재알람이 울리겠지 속으로 생각하던 찰나, 귀가 찢어지게 화재경보가 집안 가득 쩌렁 쩌렁 긴급하게 울렸다. 심장이 갑자기 콩닥 콩닥 빨리지기 시작했고 되는대로 머리속으로 우선순위를 정했다.

1) 옷 챙겨입고
2) 신랑한테 전화한 뒤
3) 물품 챙겨서 나가자!

샤워하고 나온 직후라 제대로 된 옷도 안입고 있었기 때문에 헐레벌떡 속옷과 빨리 입을 수 있는 원피스를 몸에 얹히다 시피하고 옷 매무새를 잡을 틈도 없이 휴대폰이 있는 거실로 달려나갔다. 이쯤되서는 타는 연기가 가시적으로 확인되었고, 타는 냄새가 집안에 진동을 하기 시작하여 신랑이 전화를 받기 20초까지 발을 동동구르며 물에 젖은 타월을 코에 대고 있었다.

신랑과 통화가 연결됨과 동시에 화재가 일어났고, 집 안에서 가지고 나가야할 물건이 무엇인지 물었고 손으로는 베란다 창문을 열어 아파트 밖을 내다 보았는데 불이 난곳은 90여가구 중 다름아닌 우리집 옆집이었다. 이내 심장이 더 빨리 뛰기 시작했고, 여권과 자동차 키를 챙겨 내 개인 가방에 넣고 신랑과 나의 중요한 서류들이 들어있는 여행가방을 들고 문밖으로 뛰쳐 나왔다.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아직 이사 짐을 덜 풀어서 중요한 서류들은 여행가방안에 고이 잘 모아져있어서 들고 나오는데에는 크게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복도로 나가기 위해 집문을 나섰는데….복도는 연기로 이미 자욱했고 외부로 나가는 모든 문은 닫혀져 있었다. 어떻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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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서 찾은 사건 당시와 비슷한 복도 사진.jpg

에??? 내가 알던 화재대처는 이게 아닌데?? 화재가 일어나면 방송이나 아님 누군가 아파트 마다 두드리면서 탈출하라고 소리질르거나 해야하는거 아닌가? 다들 나만 두고 간건가??’

이런 저런 생각이 동시에 들며 울컥했고, 그나마 화재 시 비상 탈출 계단이 어디있는지 알았기 때문에 숨을 참고 한걸음에 뛰어 비상계단으로 나갔다. 아파트 건물뒤에는 이미 10여명의 사람들이 모여있었는데 속으로 ‘저 두고 나가 신건가요… ㅠㅠ’ 생각하며 어리둥절 벙진 채 숨을 가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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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찍어본 비상 탈출구.jpg

골목을 돌아 아파트 건물 정면으로 가니 가장 마지막으로 나온것도 나였고, 물건을 챙겨나온것도 나뿐이었다. 내가 나왔을때는 이미 소방차들 5대가 도로를 막고 있었고 아파트 상공에는 헬리콥터까지 대기중이었다. 아파트 주민들은 모두 다들 화재경보가 울리자마자 나왔는지 대부분 맨발 차림이었고, 가지고 나온 소지품이라고 해봤자 지갑뿐인듯 보였다. 연기속에서 너무 오래있었던건 아닐까.. 머리가 지끈거리고 여전히 온몸이 후들후들 떨리고 숨이 가빴지만 이런 일이 살면서 처음이라 놀랐으리라 생각하곤 진정되기까지 기다렸다. 사람들 모두 놀랍도록 차분하게 조용히 지시를 기다렸고, 20여년 동안 우리 아파트에서 매니저로 근무하고있는 매니저도 역시 정말 차분하게 상황을 다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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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남편은 소식을 듣고 회사에서 집으로 오고 있었고, 화재도 한 시간 반만에 모두 진압되었다. 다친 사람도 아무도 없었고, 다행히 불이 났던 호수는 지난 주부터 비어있던 방이었다. 화재가 진압되고나서도 소방관들은 물 빼기 뒷 작업에 한창이었고, 한 층 두 층 올라가도 된다는 안내와 함께 사람들도 하나 둘 씩 모두 해산되었다. 화재가 났던 층은 가장 마지막으로 올라가도 된다는 신호를 받았는데, 우리 층에는 당시 나만 집에 있었는지 후에는 나 혼자 밖에 남지 않았었다. 신랑이 오고나서 소방관 한 분이 3층에 직접 데려다 주겠다고 하셔서 같이 올라가며 화재 사건은 그렇게 마무리가 되었다. 다행히 집에오니 있던 두통도 가시고 가슴 두근거림도 사라졌다.

한시간 반동안 건물 밖에서 지끈거리는 머리를 웅켜진 채 기다리는 동안, 왜 나는 한국에서 화재교육을 정기적으로 받지 않았나 갑자기 원망감이 가슴속 깊은곳으로부터 치밀어 올랐다. 미국에서 자란 남편은 초중고 모두 두세달에 한번씩 화재 대비 훈련, 지진 대비 훈련 및 총기 사건 대비 훈련까지 받았다는데.. 나는 유치원부터 대학교까지 소화기 사용하는 방법은 배웠어도 실제로 화재가 날 경우 어떻게 해야하는지 실제 가상체험훈련을 받지 않았던 부분(사이렌 울리며 실제처럼 훈련하는 식의)이 비교되면서 속상함에 눈물이 다 나왔다.

더군다나 미국은 학교에서 그치는게 아니라 심지어 직장에서도 화재 교육과 총기 사건 대비 교육은 정기적으로 한다고 한다. 생각해보니 5년전에 2년간 일했던 호주에서도 일했던 근무처 어디든 한달에 한번씩 화재 교육은 –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이더라도 – 직원들 모아 앉혀두고 빠지지 않고 진행했었다. ‘세월호 사건 이후로 우리나라 학생들의 안전교육은 규칙적으로, 그리고 제대로 실시되고 있을까? 학생들 뿐만아니라, 기업, 직장에서도 화재, 지진등의 현장교육은 자발적으로 그리고 주기적으로 해주면 좋을텐데!’ 라며 – 별의별 오지랍 넓은 생각도 들었다.

그날 저녁, 화재가 났던 아파트 바로 아래층의 룸은 화재 진압 시에 사용되었단 물 때문에 물 난리가 나서 아파트 관리 매니저는 해당 주민과 아파트 보험, 비용 배상, 다른 호수로의 이동등을 얘기하느라 바빴고, 화재가 난 룸 앞 복도에는 젖은 카페트를 말릴 겸, 탄 냄새도 없애기 위해서 강력 선풍기 두 대가 밤새 풀가동 되고 있었다.

다음날인 오늘 아침, ATI 라는 회사에서 우리 아파트를 방문하여 초 저녁까지 화재로 일어난 현장 보수작업과 냄새 제거등을 위해 일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덕분에 저녁 즈음에는 복도에서 탄 냄새는 전혀 나지 않고 물로 질척거렸던 카페트도 뽀송뽀송하게 말라 있었다.

인터넷에서 소방훈련 비디오 찾아보다가 알게되었는데, 화재 시 개폐문은 자동적으로 닫힌다고 한다. (모든 문을 닫은 채 나를 남겨 두고 떠난게 아니었군. ^^;) 영상을 보니 하던 거 멈추고 침착하게 탈출해라고 되어있는데.. 중요한 서류는 우리 시댁처럼 화재에도 타지 않는 금고 (fireproof safety deposit box)에 넣어두고 나올 수 있도록 금고 하나 장만해야지 않되겠다. 혹시나 화재가 생기더라도 특별히 챙길 것 없이 바로 나올 수 있도록 말이다.

속상한 마음에 별의별게 다 원망스럽고 이것저것 탓했지만 사실 소방훈련은 호주에서 있는 동안 매달 받았었다 (비록 가상훈련은 아니었지만). 하지만 호주를 떠나 화재 교육을 안받은지 5년이 넘다보니 갑작스런 실제 화재 상황에서 뭘 어떻게 해야하는지 당황스럽기만했다. 응급 처치 자격증을 매 2년마다 갱신해야하는 규정도 반복하지 않으면 잊을 수 있기 때문에 생긴걸로 알고 있는데, 화재교육도 그런 의미에서 주기적으로 받아야하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지금으로선 무직이니 스스로 대처법을 찾는 수 밖에 없는 것같다. 그런 의미에서.. 조만간 총기 사건 대비에 관련하여서도 알아봐야겠다. 결국 어느 누구도 나를 지켜줄 수 없고, 나의 안전은 오롯이 나의 책임일테니까.


Featured Image 1 courtesy of: TV4 News

Ciena About Author

캘리포니아 로스엔젤레스에서 활동하는 블로그 운영자이자 콘텐츠 제작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