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반만에 찾은, 꿈만 같았던 한국 방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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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적 작가 시점

2년 반만에 찾은 한국은 낯익은 동시에 낯설었다. 그리고 묘했다. 난 분명 여기에서 자란 사람인데, 이 곳에 온전히 소속되어 있지 않은듯한 생경한 느낌이 한국에 있는 내내 쉽게 떨쳐지지가 않았다. 새로운 여행지를 가면 늘 수첩과 펜을 잡고 이방인 입장에서 느끼는 낯선 점들을 줄기차게 적어나가는 습관이 있는데,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전지적 시점으로 보이는 한국을 바라보며 마치 낯선 외국땅에 온냥, 나는 매일 무언가 핸드폰 메모장에 바삐 적고 있었다. 눈치 채지 못한 사이, 그 새 나는 이방인이 된걸까. 아니지, 그간 알게 모르게 나도 변했을테고 한국도 변했겠지.

내가 본 2018년 여름의 한국은 뜨거웠고, 치열했지만, 동시에 따듯했다. 가져간 것보다도 더 많은 것을 받았고, 머릿속에서 그렸던 것보다도 훨씬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역시 내 집만한 곳이 없나보다. 여태까지 여행했던 여행지중 그 어느 곳보다 재밌었고 마음이 편했다. 이렇게 맛잇는 음식이 있는 나라가 또 있을까?싶었고. 연일 땀을 비오듯이 쏟아 내면서도, 평소대로라면 한창 일하고 있을 시간에 이렇게 빠릿빠릿하게 마음 편한 고향에서 돌아다니니 특별히 아무것도 안하고 걸어다니기만 해도 마냥 좋았다. 불과 몇년 전, 한국에서 살 때만해도 항상 해외로 나가 사는 로망이 있었고, 한국이 지긋지긋하다고 생각했었던 나였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번 한국방문을 통해 그 때와는 180도 다른 생각이 들게 되었고, 외려 한국이 너무 좋다고 느끼게 되었다. 정말 내가 이방인의 입장이라서 그런걸까? 사회의 깊은 이면을 마주하지 않고, 그저 재밌게 시간을 보내다가 떠나면 되는 그런 입장이라서?(이 생각은 한국을 떠날무렵 바뀌긴 했다)

만나는 친구들마다 (한국을 방문한) 느낌이 어떻냐고 물었는데, 그때마다 나는 ‘꼭 꿈을 꾸는 것 같다’고 대답했다. 이게 꿈이 아니라면, 잠시 냉동인간으로 잠자고 있다가 깨어난 느낌이라고(내가 동면한 사이에 한국만 변한것 같다-는 뉘앙스). 한국으로 출국하기 일주일 전, 회사에 찾아 온 한 한인 노부부는 50년만에 한국을 방문한다고 했었다. 그들에 비하면, 내가 기억하는 2년 전의 한국은 크게 변하지 않았으리라 예상했지만, 나의 예상을 깨고 2년동안에도 꽤나 많은 모습이 바뀌어 있었다. 이 곳이 내가 기억하는 한국이긴한데 뭔가 다른 느낌. 분명 이전에도 경험해 본 느낌이었다.

“정말 꿈일지도 몰라.”

2011년 호주에서 2년을 꼬박 채우고, 한국에 돌아왔었을 때의 느낌과 비슷했다. 호주에서 있었던 삶은 꿈이었고, 이제 꿈에서 깨어난 현실(한국)로 돌아 온느낌이었달까. 이번에는 꿈이라는 점에서 비슷한 공통점이 있지만, 반대로 한국의 방문이 꿈같이 느껴졌다. 왜, 꿈에서는 내가 잘 아는 장소라고 확신이 드는데, 잘 살펴보면 내가 기억하던 그 장소의 광경과는 사뭇 다른 때가 비일비재 하지 않은가. 딱 그런 느낌이었다.

#이방인 

아래로는 아지랑이가 모락모락 피어나는 아스팔트를, 위로는 현기증이 날만큼 뜨거운 태양을 두고 – 내 눈에 비치는 나의 옛 동네는 꽤나 몽환적이었다. 가는 곳곳마다 서려진 온갖 추억들이 옛필름 마냥 한 장면, 한 장면씩 눈앞에 주마등처럼 순식간에 스쳐 지나갔다. 마치 영화의 주인공이 과거회상 장면에 들어가 과거의 자기모습을 관찰하고 있는 것 같은(해리포터 속의 펜시브 Pensieve를 이용한듯한) 광경이었다. 열흘 후면 한동안 또 다시 못본다는 아쉬운 생각에 나는 눈을 최대한 크게 떠서 보고, 또 보고. 그렇게 쉴새없이 주위를 두리번 거리며 옛동네를 눈과 카메라에 담았다. 이미 방배동엔 2년 사이에 처음 보는 건물들이 본인들이 안방 마님인냥 자리를 떡하니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다음 한국에 올 때 내가 기억하는 우리 동네가 그대로 있으리라는 보장은 더더욱 없었다. 더 변하기 전에 최대한 많이 눈에 담고, 많이 카메라로 기록을 남기고 싶었다. 모르는 누가보면 마치 길을 잃은 사람이라도 되는 마냥, 아니면 한국에 처음 온 외국이라도 되는냥 골목과 건물을 구석구석에 핸드폰을 들고 사진을 찍는 내 모습이 이상하기 짝이 없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이 짧은 기간동안 우리는 친정과 친구들이 있는 서울과, 짝궁이 한국에서 살았던 부천을 계속 왕래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편도로 한시간씩 걸리는 거리라 꽤 귀찮을 법도 하고, 특히 이 무더위 날씨에는 더더욱 피하고 싶었던 루트였고, 어떻게 보면 굉장한 시간낭비였다. 하지만 본인이 4년동안 살던 곳이 얼마나 변했는 지 두 눈으로 보고 싶은 마음, 그리고 자주 가던 식당과 상점에서 늘 반겨주던 직원들에게 인사를 드리고 싶은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아는 나였다. 낯선 외국땅에 살 때에는 나에게 한마디라도 더 걸어주며, 안부를 물어주는 사람이 기억이 남는 법이니까. 우리 부모님이 설사 방배동에서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간다고 하시더라도, 나 또한 추억때문에라도 그 곳을 찾겠지라는 생각도 들었고. 그렇게 우리는 매일 지하철에 몸을 의지한 채 48km를 왕복하다시피했다.

#익숨함의 이면 

내가 살던 우물밖으로 나가야 비로소 내 생각의 틀과 경험이 얼마나 좁았는지 알게 되고, 시야를 넓힐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각기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나의 경우, 내 우물이 얼마나 마음 편안하고 안전하며 좋은 울타리였는지도 깨닫게 되었다. 그렇게 한국을 떠나고 미국에 와서는 (크게 불편한 점이 없었는데도) 나는 미국의 사소한 것 까지 불평을 하곤 했다. 왜 미국은 한국같지 않냐며, 그렇게 지긋지긋하다던 한국이 그 새 더 낫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이다(더군다나 밥해주고 빨래 및 청소까지 해주는 엄마가 없어서 그런지 미국의 생활이 더 혹독하게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다행히 이번 한국여행은 지금 내가 가진 환경을 감사하게 여기게 된 계기가 되었다. 물론 내가 느낀 한국의 좋은 점들이 훨~씬 더 많긴했지만, 불편한 점들을 다시 피부로 생생이 느끼면서 세상 어느곳도 완벽한 곳이 없고 다 장단점이 있구나-라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이번 여행에서 유독 불편하다고 느꼈던 점들 중에서는 보행자가 보호받지 못하는 교통환경, 그리고 신경이 날카롭게 선 사람들이 가장 거슬렸다. 서울은 사람이 너무 많아서 몸도 정신도 부딪힐 일이 잦아서 그렇게 다들 예민한걸까? 아니면 날씨탓이었을까? 그 와중에 친절한 사람도 있었지만, 정말 별거 아닌거 가지고 손님에게 또는 반대로 직원들에게 필요이상으로 신경질 내는 사람들이 너무 자주 목격되었다. 친구말대로 경쟁환경이 포화상태이고 사는게 힘들어 다들 날이 선 상태로 하루하루를 버티는 걸까? 그런데 생각해보면 나도 한국에서는 늘 화를 아슬아슬하게 감추고 있거나 쉽게 터트리기도 했던 것 같다. 아무튼 결론은 어느 나라도 완벽하지 않다는 것, 그리고 정작 문제는 우리가 너무 쉽게 단점을 장점보다 더 부각하여 보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익숙해지면 감사함을 잊고, 또 불평하기 쉬워진다. 나의 환경을 객관적으로 보기 위해 내 환경과 비교 대상이 될 수 있는 곳으로 여행을 잠시 갔다 오는게 우리 모두에게 가끔은 필요한 것 같다.

#바람 

친구들은 정말 대견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했다. 다들 회사를 내년에 그만둔다고 벼루고 있거나, 이미 그만 뒀거나, 게중에 극소수는 그만두지 못해 안간힘을 쓰며 버티고 있었다. 곳곳에서 워라벨을 외치고 변하고 있다하지만, 미디어가 아닌 내 귀로 직접 듣는 이야기들에는 여전히 유독한 업무 환경이고 개인의 삶이 없었다. 주중에는 야근하기 일쑤라 취미는 커녕 인기 드라마 한편도 볼 시간과 기력이 없다고 하는데, 나 또한 그랬었기 때문에 듣고만 있어도 참 속상했다. 아직도 변한게 없구나. 업무량과 잦은 야근과 더불어 그 몹쓸 갑질문화까지 – 이 복합적인 스트레스 요인들은 생명도 빼앗아 가고 있었다. 한 친구가 종사하는 사업은 진상고객들로 인한 스트레스로 여직원들의 유산이 잦아 임신한 직원창구에는 해당직원이 임신중이라는 팻말을 올려놓게끔 본사에서 지침을 내렸다고 한다. 마음이 무거웠다. 다들 귀한 집 자식들이고, 누군가의 부모이다. 아무도 그런 대접을 받을 이유가 없다. 이 점은 꼭! 꼭! 꼭! 변했으면 좋겠다 – 저녁이 있는 삶, 그리고 갑질문화 타파!!

한국은 확실히 성장통을 겪고 있다. 기존에 미미하게 불편하다고 느꼈던 점들이 이번에 방문했을 때 훨씬 나아졌거나, 생각한 것 이상으로 발전된 것도 많이 있었고, 아직은 해결이 안되었지만 해결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는 안건들도 많이 들렸다. 굳이 ‘성장통’이라고 표현하고 싶은 이유는, 한국은 여전히 많은 곳에서 변화를 시도하거나 변화의 필요성을 정말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도 변화를 주도하는 사회운동가(activist)들이 있지만, 개인적으로 느끼기에 변화를 호소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는 시위현장에 나가지 않는 이상 일상에서는 피부로 느껴지지 않는다. 문제가 있다는 것을 파악하고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는게 시작의 반이니까, 지금 당장은 속도가 안나고 답답해도, 언젠가는 변화가 생겨나지 않을까? 바라건대 궁극적으로는 좋은 방향으로 잘 변화되었으면 좋겠다. 잘하고 싶은 마음, 좋은 환경을 만들고 싶은 마음이 유독 강한 민족이 아니던가. 똑똑한 사람들이니 시간이 걸리더라도 꼭 변화시킬 수 있을거라고 확신한다.

#습관

한국은 쇼핑의 천국이었다. 이쁘장하게 만든 각종 악세사리부터, 손님의 발길을 재촉하는 각종 할인 이벤트등 없는것이 없었고, 나가는 족족 사고 싶은것이 천지였다. 엄마는 우리가 한국에 오자마자 여태까지 사고 싶었던거 마음껏 사라고 용돈을 두둑히 주셨지만, 화려하게 유혹하는 물건들 앞에서 나는 물건들과 눈빛 교환 한번 못하고 발걸음을 재촉하기에 바빴다. 한국에서는 쇼핑을 즐기기에 바빴던 나였는데. 이쁘다고 생각하는 것을 앞에두고도 ‘흠, 있으면 좋겠지만 그닥 필요한 것 같진 않은데.’라는 생각이 들기 일쑤였고, 정말 사고 싶었던 것을 발견해도 ‘이걸 사면..다 사고 싶을것 같아’라는 두려움에 또 발걸음을 돌렸다. 결국 엄마의 도움으로 겨우겨우 한국에서 꼭 사야하는 것들과 원피스 몇가지를 샀지만 이렇게 사고 싶은 것도 못사는 내 모습이 내심 안쓰러웠다. 미국에 살면서부터는 높은 세금과 월세때문에 꼭 필요한 생필품만 사왔었는데, 그래서인지 안사는게 습관이 된 모양이다. 그래도 절약하고 저금하는 소비습관에 익숙해진 지금이 나는 좋다.

#잠시만 안녕 

모처럼 만나는 친구들과 가족의 만남은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배로 좋았다. 마음의 갈증이 풀어지는 느낌이 들었달까. 3년 전 미국으로 이민을 오면서 크게 아쉬운 생각은 들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외국으로 오면서 한국에서 포기해야하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이 유독 크게 느껴졌다. 한국에서만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은 다 포기할 수 있다. 하지만 가족, 친구들과 함께 하지 못하는 시간이 너무 아쉽다. 정말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갑자기 정하기도 해서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이민길이었지만, 이렇게 외국으로 이민갈 줄 알았으면 더 자주 시간을 가질걸 그랬다. 그럴 수만 있다면 말이다… 이번에 친구들을 만나고 헤어지면서 정말 발길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주말이 한정되어 있어 주말에 다 못만나다 보니, 주중에 만날 수 있는 지 묻는 요청에 한걸음에 달려와 준 친구들. 주말에도 쉬지 않고 이 더운 날씨를 헤치고 시간을 빼서 만나준 친구들이 정말 너무 고마웠다. 그리고 드린 것 보다 너무 많이 챙겨준 엄마 아빠 ㅠ.ㅠ 말로 감히 감사함을 표현할 수 없다.

친구와 지인들의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흐느끼기를 수십번을 반복했던 이번 여행은 마치 언제 다시 돌아올 줄 모르는 이별 여행처럼 마음이 무거웠다. 눈시울이 이미 붉어진 상태로 지금 이렇게 가면 언제 또 오냐는 친구의 말에 – 간신히 이를 악물고 울음을 참으며 ‘시간이 금방 또 갈테니까, 금방 올께’ 라고 말하고 뜨거운 포옹을 하고는 황급히 발걸음을 돌렸다. 그리곤 분수대마냥 쏟아져 올라오는 눈물을 그냥 흘리게 두었다. 각자 자리에서 열심히 일하다보면 시간이 또 금방 지나가서 다시 만날 날이 금방 찾아오겠지.

“‘시간은 항상 빨리 가니까, 금방 또 올께. 우리 행복하자. 건강하게 잘 있어!'”
“엄마, 아빠, 우리 또 보자! 가서 연락할께!”

#Home Sweet Home

한국을 떠나는 날, 나는 우리의 보금자리가 있는 로스엔젤레스의 집으로 가길 고대하고 있었다. 정말 재미있는 열흘이었고, 뜻깊은 여행이었지만, 더 익숙해져서 떠나기 어려워지기 전에 집으로 가야하고, 집으로 갈 때임을 받아들여야만했다.

매번 한국을 갈 때마다 이렇게 좋은 점, 불편한 점을 느낄텐데. 단순히 국가대 국가로 비교에서 그치기 보다는, 다른 환경에 살면서 내가 변했다는 점도 받아들이고, 한국의 변화된 점도 그대로 받아들일 마음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되었다. 훗날 내가 이민 왔었던 해에 정체되어 말도 안되는 고집을 부리는 진상 한인 이민자가 되지 않으려면 앞으로 꾸준히 한국의 변화에 관심을 기울이고 지속적으로 수용하는 자세를 가지도록 노력해야 할 것 같다.

뭐니뭐니해도 이번 여행에서 가장 큰 득은, 내 조국 – 애증의 한국을 처음으로 정말 많이 사랑하게 된 것. 한국의 좋은 점, 불편한 점을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하기로 했다. (한국밖으로) 나가면 애국자가 된다더니. 이번 한국 방문 한번으로 애국자가 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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