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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살면서 총보다 무서운 것

부제: 취업란에 대한 넋두리

미국에서 살면서 가장 무서운 것은 단연 총기사건이라고 생각했었다. 적어도 미국에 오기 전까지는, 아니, 적어도 미국에 온 지 6개월이 되었던 세달 전까지만해도 말이다. 하지만 요즘 나에게 총기사건보다 더 무서운게 생겼다. 그것은 바로 ‘나의 커리어를 잃는 것’이다. 이 큰 미국땅에 나혼자 떳떳이 설 수 있는 곳이 없을것 같다는 막연한 두려움은 가끔 나를 치가 떨리도록 무섭게 한다.

남편도 번듯한 직장을 찾았겠다, 새로운 보금자리에 자리도 잘 텃겠다, 이제는 내가 구직을 차례이거니 하고 (사실 매일 나가 돌아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고, 집에만 있는게 무척 답답하다. 쉴만큼 쉬었으니 다시 일하며 인정 받고 경제 활동도 하고 싶다. 사람은 역시 일을 해야하나보다) 구직활동을 시작한지 어느덧 세달이 넘었다. 첫 달에는 연락이 오겠거니 하다 보냈고, 두번째 달부터 초조해지기 시작하더니 세번째 달이 되었을 때는 정말 우울한 나날들을 보내기 시작했다.

일주일 내내 울며 멍하니 하루를 보내기도 했고, 새벽까지 이력서를 넣다가 ‘이곳에 구직이 되면 어떤 기분일까’를 상상하다 아침해가 오는걸 보기도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분야가 업계에서 서로 모셔가려는 IT 관련 엔지니어였으면, 프로그래머였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꿈을 꾸기도하다 다시 현실을 마주 한 채, 내가 잘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는건 아닐까라는 자괴감에 사로잡혀 고통스럽게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Good Will Hunting의 주인공처럼 캐시아웃 할 수 있는 로터리 수준까지의 머리나 기술을 바라지도 않는다. 나는 그저 내가 재미있게 오래 일할 수 있는 직장을 찾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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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이 보이지 않았던 농장에서 휴식시간에 앉아있는 나.jpg

대학 졸업 후 호주에 처음 갔었을 당시, 별다른 기술이 없어 취업에 전전긍긍하다 결국 농장으로 발을 돌렸었던 적이 있다. 그때야 처음 나가본 해외에서 연명할 수 있는 일자리가 있음에 감사했고, 아무리 힘들어도 언젠간 이 모든게 다 빛이 나는 순간이 있을거라며 마음속 원천의 응원을 들으며 청춘을 불살랐다. 결론은 호주에서 두번째 되던 해, 8개월의 농장생활을 접고 도시로 나와 번듯한 일자리를 구해서, TESOL 자격증 수업도 듣고, 여행도 많이 다니며 호주에 가기 전 작성했던 나의 버켓리스트를 다 채우고 돌아왔다. 아픈 손목과 손가락 뼈마디가 굵어진 영광의 상처들도 함께.

부랑자처럼 호주내에서 이 농장, 저 농장, 이 도시, 저 도시를 돌아다니며 일자리를 알아보던 나에게도 내가 절대로 하지 않겠다는 직종은 있었다. 바로 ‘한인 밑에서 일하는것’과 ‘매춘’을 하는 일이다. 어렸을때부터 꿈꿔오며 어렵게 나간 첫 해외생활인데, 거기서까지 한인 밑에서 일하면 호주까지 간 의미가 없을 것 같았다. 돈이 바닥까지 떨어질지언정 한인 음식점, 한인 회사에서는 일하지 않겠노라고, 매춘은 하지 않겠노라고 다짐했다. (놀랍게도 실제로 돈이 떨어져 주변에 매춘을 시작하는 남여들이 꽤나 있었다) 기약없는 내일처럼 보여도 어떻게든 살아나갈 방법은 감사하게도 주어졌었고, 주변에서 많은 도움을 주신 덕분에 나는 그 다짐을 끝까지 지킬 수 있었다.

호주를 떠난지 어언 6년이 된 지금, 나는 다시 내 조국이 아닌 외국땅에서 구직생활을 하고 있지만 이번에는 대학을 갓 졸업한 새내기가 아니라 다년간 경력이 있는 경력자로 도전하고 있다. 심지어 호주에서는 죽어도 일하지 않겠노라했던 한인회사까지도 지원하고 있다. 경력이 있는 만큼, 그리고 한인회사까지 고려하는 만큼 ‘이번에는 좀 다르겠지, 호주에서 취직할때보다 덜 어렵겠지’ 생각했던건 나의 착각이었을까, 아님 나의 오만이었을까. 취업의 길은 좀처럼 나에게 열리고 있지 않고 있다.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요구하는 경력, 기준들은 얼추 다 맞는데… 미국내 대학을 안나와서일까? 미국에서 일한 경력이 없어서 일까? 내가 외국인이라서일까? 도대체 뭐가 잘못된걸까. 왜 한인 회사들마저 연락이 없는걸까? 이 궁극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이 곳 미국인 친구들은 놀랍도록 일관성있게 입을 모아 말한다.

지원하는 회사에 연계가 있는가?
Do you have connection there?

아무런 연계없이 일자리를 구하기란 쉽지않다.
Don’t think that you can get a job through the front door.

여기서 연계란 지원하는 회사에 일하고 있는 지인이 있다던가, 다리 건너 지인이 있는지의 여부를 말한다. 한국에서 말하는 낙하산의 개념과는 차이가 있다. 내부 직원으로부터 추천을 받았다고 무조건 적인 채용을 하는게 아니라, 면접의 오퍼를 받을 수 있는 심사 고려 대상으로 올라갈 수 있는 기회를 가질 뿐이다. 회사에서는 지인의 추천을 받은 지원자들을 우선순위로 면접을 보고 싶어하는데 (오직 추천된 지원자만 보는 회사들도 많다고 들었다) 대부분, 추천받은 지원자안에서 채용을 하다시피 한다. 나 또한 여러 회사에 지원해보니 미국회사들은 직접 지원자를 받는 자사 홈페이지 링크가 따로 있는데 회사 자체 지원서에 추천인 정보를 적는 칸이 있는 회사가 정말 많았다.

만약 지원하고자하는 회사에 연계가 없다면 미국내에서 경력조회를 할 수 있는 경력이라도 있어야하는 분위기이다. 심지어 스타벅스, 타켓 (Target) 등 학위를 요구하지 않는 서비스업 및 영업판매를 하는 곳에서도 경력조회를 필수로 하고 있다. (한국에서 가져온 추천서는 무용지물이다. 추천서는 대학원 입학 시에만 필요한것으로 보인다)

비슷한 이유로 대학을 갓 졸업한 뒤 한국에서 원어민 교사로 일하다 미국으로 돌아온 지인들이 (딱히 아는 연계가 없어, 또는 미국에서 일한 경력이 없어) 구직에 큰 어려움을 겪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거나 아니면 다시 학교(석사)를 다니는듯하다. 한국에서 알게되어 꾸준히 연락하는 미국인 친구 한명도, 상당히 똑똑한 친구인데도 경비원, 영업판매원등 여러 일자리를 하며 전전긍긍하다 제대로 취업하는데까지 1년반이 넘게 걸렸다고하니 말 다했지 않나 싶다. 세계 경제가 아무리 좋지 않다 한들, 이 넓은 미국땅에 나를 받아주는 일자리가 정말 하나도 없는걸까? 아니면 한국과 마찬가지로 모두 좋은 회사를 가고 싶어하기때문에 일어난 병목현상일까.

언젠가 인연이 될 나의 회사를 제 때(right time)에 만날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이 기다림과 지원과정이 정말 사람을 지치게한다. 물론 나의 기준이 높은 편에 있긴하다. 이제 30대를 앞두고 있으니 평생 커리어로 삼을 수 있는 직종이나 회사에 취업하고 싶기도 한 마음에, 그리고 한번쯤은 아메리칸 드림이 실현 가능한 곳에서 일해보고 싶은 마음에 기준을 높게 잡아 지원했었던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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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마른 바위속에서 살길을 찾아 꿋꿋이 자라나는 생명.jpg

부양가족 포함 인당 월 100만원이 넘는 보험금 지급 | 무료 점심 | 무제한 음료 및 간식 제공 | 무제한 휴가 및 병가 | 휴가비 년 2000불 | 교통비 월 150불 | 퇴직연금 | 통신비 월 50불 | 체력단련비 월 150불 | 한국보다 몇 배가 넘는 월급 | 탄력 근무제 | 자율 근무시간 | 자택근무 가능 | 취미비 1000불 | 자기계발 교육비 전액공제 

현재 남편이 일하는 회사의 혜택들이다. 남편은 2년이 채 안된 스타트업 회사에서 마케팅 매니저로 일하고 있는데, 스타트업 회사들은 모두 비슷한 혜택들을 가지고 있고 더 좋은 인재 발굴 및 스카우팅을 위해 더 다양한 혜택을 제공하고자 심지어 혜택(베니핏) 매니저 포지션도 따로 두고있는 회사들도 있다. (물론 좋은 혜택을 누리는 만큼, 성과가 없으면 (bad performance) 하루 아침에 해고가 될 수 있는게 이곳의 마주하고 싶지 않은 현실이기도 하다) 이것 저것 계산해보면 한해 한 직원당 들어가는 금액만도 무려 1억이 쉽게 넘어간다. 이러니 회사입장에서는 당연히 ‘아무나’ 뽑고 싶어하지않는건 당연할지도 모르는 일이겠다. 지원자가 회사에 연계도 없고 미국에서 받은 교육 및 근무 경력도 없는 상황이라면 더더욱이 그럴지도.

올해 8월, 시댁보다 훨씬 큰 도시인 LA에 이사오게 되며 LA에는 미국 현지회사도 많고 한인회사도 많으니, 당연히 취업의 기회도 더 많을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만약 현지회사에서 채용이 안되면 한인회사에서는 일할 수 있겠지라는 막연한 안도감도 없지 않아 있었다. 하지만 이미 큰 기업들은 내노라는 경력이 있는 경력자들만 뽑기 일쑤고, 이제 갓 사업을 시작한 스타트업은 이미 큰 기업에서 다년간 일한 인재들에게 거액의 연봉과 각종 매력적인 혜택을 제안하며 인재유치에 혈안이 되어있다. 심지어 미국의 한인회사들은 한국어 회화가 가능한 2세 교포들 – 다시말해 영어가 원어민 수준이고 미국에서 교육을 받은 한인들을 강하게 선호한다는 청천벽력같은 소식도 들었다.

누군가는 남편의 나라에서 의사소통이 되니 어디라도 구직을 할 수 있는 내가 아주 행운아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감사함에도 모자를 판에 더 큰 욕심을 부려 아무 일자리나 일하고 싶지 않아하는 내 모습을 보면 정말 사람의 욕심이 끝이 없긴 한 것 같다. 하지만 이렇게 욕심을 부리는건, 한번 다른길로 가면 다신 돌아올 수 없는, 혹은 후에 다시 돌아오고 싶어도 돌아오기 힘든 커리어 선택이 될것만 같기 때문이다. 어려워도 내 커리어를 살려 나도 아버님, 시누이처럼 억대연봉을 살면서 한번쯤은 받아보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냥 어느 회사라도, 말단사원 포지션이어도 기꺼이 기쁜 마음으로 일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럴려면.. 이력서를 가다듬을게 아니라, 이곳 저곳 지원을 할게 아니라, 주변에 도움을 신청해야한다는 현실이 나를 마주하고 있다.

남편의 직장동료들도 시누이도 여태 일하면서 한번도 직접지원을 해서 채용된 적이 없고 아는 사람을 통해서 지원하고 면접봐서 채용됬다고 입을 모아 말하니 연계를 통한 취직은 믿고 싶지 않아도 내가 부딪혀야하는 현실이고, 도움을 청하는것도 실력으로 보는 이 미국땅에서 내가 무조건 적응해야만 하는 필수사항이다.

높은 연봉받으며 도전적인 일을 해보고 싶기도 하지만 (이런 상황이라면 가능이나할까 모르겠지만), 적게 받더라도 쉬운 일 하며 오래 재밌게 일할 수 있는 직장을 찾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꾸기도 한다 (그런 직장이 있긴 할까?). 다시 학교로 가서 커리어를 전향하는 방법도 있지만 아직 내가 뭘 특별히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한인들이 외국으로 이민오면서 많이 전향하는 간호사, 치위생사, 네일아티스트, 약사보조, 네일 아티스트 등은 나의 관심사와 멀거나 나에겐 어려워 도저히 못할것같은 직종들이다. 지역주민으로 인정되어 저렴한 학비 적용을 받을 수 있는 내년 9월 입학시기까지 시간이 있으니 공부를 더 할지의 여부는 생각할 시간이 좀 더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한국이라면 이렇게까지 취직이 힘들었을까?라는 생각도 가끔한다. 하지만 이건 내가 선택한 길이다. 죽이되든 밥이되든 어떻게든 이곳에서 헤쳐나가야한다. 어머님 말씀대로 아직 구직생활 시작한지 세달밖에 안지났고, 엄마 말대로 인연이 될 회사는 제때에 만날 수 있을거라는 말을 나는 아직도 더 믿고 싶다. 좀 더 겸손해지고 차근차근 일자리를 알아보라는 하늘의 계시일지도. 아직 많이 부딪혀 보지도 않았으니 계속 부딪히면 길이 열릴꺼라고 믿고 싶다. 어느 일이든 취업을 꼭 해서 1년이 지나 이 글을 보며 내가 웃고 있길 바랄뿐이다.

글을 마치며…
해외에서 고군분투로 열심히 구직활동하있는 모든 분들께 응원의 메세지 보냅니다. 우리 힘내요!!


Ciena About Author

캘리포니아 로스엔젤레스에서 활동하는 블로그 운영자이자 콘텐츠 제작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