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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버스에서 일어나는 상상초월 에피소드

tales from public transporation

2019년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엔젤레스.

2년째 매일 아침 저녁 버스를 타고 출퇴근을 한다. 미국으로 오기 전, 막연히 미국은 대중교통이 잘 구비되어 있지 않아 가까운 곳에 가더라도 운전을 하고 가야할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LA의 대중교통은 꽤 괜찮은 편이다. 언젠가 외곽으로 이사를 가게 되면 이마저도 불가능할테니 지금 이렇게 대중교통으로 출퇴근을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버스를 타고 출퇴근을 하면 상상조차 하지 못할 일들이 일어나기도 하는데; 가끔은 미국 시트콤을 보는 것 같아 재밌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꽤 스트레스 받는 상황이 되기도 한다. 아무쪼록 시간이 흐르면 다 추억거리가 되겠지. 이 참에 생각나는 에피소드 몇가지를 기록해본다.

기사편

1 | 탑승 승객에 제한을 두는 기사님
오전 7시 반, UCLA행 버스가 도착했다. 버스 앞문이 열리고, 승객이 탑승하기도 전에 카리스마 넘치는 기사님이 손을 쭉 내밀며 단호한 목소리로 승객들의 탑승 제지를 한다.

현재 버스가 만원이니 지금 상황으로봐선 다섯분만 더 태울 수 있습니다. 그러니 다섯 명만 타세요!

5명까지만 받겠다는 기사에 말에 대기줄 앞단에 있던 나를 포함하여 정말 딱 5명만 타고, 남겨진 이들은 다음 버스를 기다려야했다. 여러가지 이유로 1분 1초가 아까운 출근시간이라 이렇게 운좋게 간신히 버스를 타는 아침에는 왠지 구조 보트에 선택적으로 구조된(?) 느낌이 든다.

심지어 어떤 버스 기사님들은 승객의 안전을 위해서 버스가 만원일 때 승객을 추가로 태우지 않기 위해서 부자가 울리지 않은 정거장은 정차하지 않고 그냥 지나친다. 여기서 말하는 만원버스는 모든 좌석이 착석 되어있고, 앉지 못한 승객들은 모두 서서 한자리씩 차지하고 있지만, 아무리 만원이라도 서서 가는 사람들끼리 옷자락은 부딪히지 않을 정도의 여유 공간은 늘 있다. 이는 개인의 공간을 중요시하는 미국문화가 반영되어있는 거라고 보인다. 이렇게 탑승 거부가 종종 일어나기때문에 출근길에 버스를 기다릴 때마다 부디 버스가 만원이 아니길 바라게 된다.

2 | 막간을 이용하여 폴댄스를 추는 엔터네이너형 기사님
유독 돋보이고 싶어하는 기사님들이 있다. 내가 타는 버스라인에는 화려한 가발과 선글라스를 쓰는 기사님이 있는데 그분은 휠체어를 탄 승객이 탑승하는 때면 기다리는 짬을 이용하여 버스 기둥을 잡고 폴댄스를 가볍게(?) 추며 스트레칭의 중요성을 승객들에게 강조한다. 개인적으로 넘나 좋아하는 기사님. 운전하는 내내 얼마나 말이 많으신 지 거의 개그 생방송을 보는 수준이다. 이 분을 만나면 아침에 잠이 확 달아난다. 예전에 개그맨 이영자가 버스개그를 하던거랑 아주 비슷한 느낌이랄까.

3 | 개척자 스타일 기사님
사고가 나서 길이 막히는게 보이면 과감히 주택가 샛길로 빠지는 기사님들이 있다. 위기대처능력이 타고난걸지도. 사고로 막힌 교통체중을 세월아 네월아 기다릴 수 만은 없다고 탈노선을 하시는 건데, 아침에 눈붙이고 있다가 어디쯤 왔나 확인차 눈을 떴을 때 주택가에서 버스가 달리고 있으면 꽤 당황스럽다. 덕분에 회사에 늦진 않게 되었지만.

4 | 욕쟁이 기사님
이들은 대부분 도로의 무법자들을 향해 욕을 하지만, 이 중 소수는 아주 무례한 승객들(이런 사람들은 대부분 약에 취한 노숙자인 경우가 대부분임)에게 아주 강한 욕 한방을 날리며 당장 내 버스에서 내리라고 호통을 치기도 한다. 버스에 탑승하는 노숙자들이 심심찮게 소동을 만들어 내기 때문에 나는 오히려 이렇게 총대를 메는 기사님들이 더 좋다. 아쉬운건 승객들에게 피해를 직접 입히지 않는 이상 대부분의 기사님들은 꾹꾹 참고 소동을 부리는 승객들을 대면하지 않는다는거다.

5 | 개인적인 이유로 정차하는 기사님
아침에 배가 고프다고 정차해서 서브웨이에 잠깐 들려서 뭘 좀 사와도 되겠냐는 기사님부터 팔이 너무 저려온다고 잠깐 좀 쉬어야 겠다고 정차하는 기사님까지 이유는 다양하다. 나만 마음이 급한가? 승객들은 대부분 아랑곳하지 않는 눈치다.

6 | 예정보다 너무 빨리 왔다면서 정차하는 기사님
예정보다 너무 빨리 도착했다면서 잠시 정차해가야한다는 기사님들이 의외로 많다. 이런 경우 3-5분정도 정차했다가 출발한다. 시간을 엄수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왜 구글앱이나 기타 교통정보 앱들은 정확도가 늘 떨어지는걸까?

승객편

1 | 손톱깎는 승객
흔하진 않다. 여태까지 두명 봤다. 한명은 히스패닉 50대 여자, 한명은 백인 40대 남자. 둘다 손톱을 깎으며 바닥에 자연스럽게 버렸고, 다른곳으로 튀어도 아랑곳 하지 않았다. 남자는 정장을 쫙 빼입고 떡하니 한 자리 차지하며 주위의 시선을 아랑곳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열 손가락 손톱을 깎았다. 앞에 앉아있던 난 손톱 잔여물이 기여코 내 옆자리로 날아드는걸 두 눈으로 보고 바로 자리를 이동했다.

2 | 색조화장 풀 메이컵 하는 승객
이 곳 직장인 여성들이 대부분 화장을 하는 건 아니지만(오히려 실상은 그 반대인것 같다. 대부분이 화장을 안하는 듯) 꼭 이렇게 버스안에서 풀메를 하는 분들을 자주 본다. 눈썹도 그리고, 블러셔, 립스틱, 아이 쉐도우, 마스카라까지 주저없이 슥슥슥슥 한다. 흔들리는 버스안에서 아무렇지 않게 풀메를 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감탄이 저절로 나온다. 화장이 꽤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임은 같은 여자로 이해하지만, 나같으면 회사에 도착해서 화장실에서 할듯!

3 | 도시락 통을 꺼내 음식 냄새 폴폴 내며 먹는 승객
분명 식음료 금지라고 붙어져 있는데도 무시하고 정말 음식냄새가 진동을 하는 음식을 먹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부류들은 특히 퇴근시간에 몰려있다. 냄새가 안나는 초콜렛이나 에너지바 같은건 이해하지만 냄새가 버스 전체에 진동하는 음식을 먹는 부류는 진짜 민폐다. 호주에선 식음료를 들고 절대로 승차 할 수 없었는데 이런 걸 보면 미국의 버스 기사들이 꽤 관대하다. 아니면 흉기를 갖고 탈까봐 무서워서 뭐라 안하는 걸까? 하긴 약물 과다 복용으로 혼자 중얼거리거나 허공에 대고 욕설을 해대는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도 타긴 하니까. 방어막이 없는 운전자들이 강하게 제지를 못하는 것도 이해는 된다.

4 | OCD 결벽주의자
종종 의료용 라텍스 장갑을 양손에 끼고 타거나 버스 좌석에 깔고 앉을 종이나 합판(?) 같은걸 들고 타는 사람들이 있다. 여태까지 본 사람들중에 가장 최고는 본인 가방까지 비닐봉지로 다 둘러싸고 빈 옆좌석에 가방을 올려놓았던 분. 이쯤되면 사람들 많이 타는 대중교통을 이용할게 아니라 자가용을 사야하는게 아닐까 싶다.

5 | 엄청 시끄럽게 통화 또는 동승자와 대화하는 승객
일본에 갔을 때 사람들이 많은 공공장소나 영업장소(가령 식당)에서 통화 자제 그림 스티커를 정말 가는 곳마다 봤었다. 일본사람이 미국 버스를 타서 엄청 시끄럽게 통화하는 승객들을 보면 멘붕이 크게 올듯하다. 특히 퇴근시간엔 정말 많은 사람들이 거침없이 크게 통화한다. 승객중 귀막이 스폰지를 끼고 있는 사람을 종종 보게되는건 놀랍지 않은 일이다. 아침부터 동승자와 시끌벅적 떠드는 사람들에게는 진짜 조용히 좀 얘기하라고 말하고 싶다. 호주에서 한번은 어떤 아저씨가 시끄럽게 떠드는 중고등학생들에게 ” 왜 우리가 너희 얘기를 다 듣고 있어야하는거지? 조용히 좀 말하면 안돼니?!”라고 주의를 주었었는데 그 아저씨처럼 말하고 싶은 충동이 목 끝까지 올라올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6 | 목욕을 최소 6개월은 안한것처럼 심하게 역한 냄새가 나는 승객
매달 최소 한번은 경험한다. 이런 노숙자가 버스에 타면 온 버스에서 역한 냄새가 진동을 해서 다들 코를 손가락이나 손으로 막거나, 긴머리의 여성들은 머리카락 뭉치를 코로 갖다 대기도 한다. 한번은 냄새가 너무 역해서 숨을 쉴 수 없어 나는 버스에서 내려 다음 버스를 탄 적도 있다.

7 | 넉살 좋은 승객
탑승하는 모든 사람들을 마치 아는 사람에게 인사하듯이 반갑게 인사한다. 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딱히 반응을 못해주고 지나쳐버렸지만.

8 | 설교형 스타일 승객
자기가 믿는 종교 또는 철학을 승객들을 마주한 채 목청껏 떠드는 사람들이 있다. 버스에 탑승하고 이런 사람이 있다는 걸 파악하는 순간 나는 이어폰을 주섬주섬 꺼낸다.

9 | 이어폰으로 노래들으며 크게 노래를 부르는 승객
자기애에 취한 사람들인 경우가 많다. 안타깝게도 대부분 들어주기 힘든 실력들이다. 듣고있자면 꽤나 고통스럽다. 소음 차단이 되는 헤드셋이나 귀마개를 착용하고 싶은 욕구가 강하게 밀려온다. 이런 승객들 때문에 한동안 귀마개를 가방에 넣고 다닌적도 있는데 지금은 그냥 음악을 크게 듣는다. 여러모로 귀만 고생이다.

10 | 짐이 엄청 많은 승객
상상 초월을 할 정도로 쇼핑 카트처럼 보이는 수레(?)에 짐을 한가득, 쌓고 쌓고 또 쌓아 타는 사람들이 있다. 저 짐에 온갖 살림이 다 있나 싶을 정도로 한 짐 꾸려 탑승한다. 문제는 이런 짐들이 버스 가운데를 떡하니 막고 있어서 승객들이 뒷자석으로 이동을 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Photo by Pau Casals, Victor Xok, Alan Chen on Unsplash

Ciena About Author

캘리포니아 로스엔젤레스에서 활동하는 블로그 운영자이자 콘텐츠 제작자입니다.